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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899년 조선시대 선비가 꿈에서 보고 온 미래 대한민국의 모습

by 이글이글 2021.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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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2월 25일자 제국신문에 매우 눈길을 끄는 놀라운 글이 실려 있어 소개합니다.

1899년도에 살고 있던 한 조선인 선비가 꿈에서 미래 대한민국을 보고 왔다면서 남긴 글인데, 찬찬히 읽어보니 실제로 미래를 보고 온 것인지 놀라울 정도로 일치되는 부분도 있고, 선조들이 얼마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부강한 나라를 꿈꿔왔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글입니다.

제국신문 1899년 2월 25일
제국신문 1899년 2월 25일

 

"(전략) 홀연히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에서는 대한이 세계에서 제일 문명하고 부강한 나라가 되어 있었다. 친구들과 더불어 세계를 유람하기로 작정하고 먼저 우리나라 강산부터 구경하는데, 성중(城中)에서부터 시작하여 종로라 하는 곳을 가보니 10여 층씩 되는, 옥석(玉石)으로 지은 집들이 창공에 높이 솟아 있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전깃줄과 전홧줄은 사방으로 거미줄 업히듯 하였고, 길들은 전부 우물정자 로 되어 있으며, 좌우에 사람이 다니는 길과 우마(牛馬)가 다니는 길이 각각 나뉘어 있어 편리하다. 길 위에는 박석(薄石)을 깔아 먼지가 흩날리지 않고, 길 중앙에는 각종 식물을 심어서 보기도 좋거니와 왕래 하는 사람들을 향기롭게 한다. 사방에 화륜차와 마차 소리에 정신을 가다듬기가 어렵다.

 

각 전(시장)들을 구경하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태산같이 쌓인 물건들은 전에 보지도 못하고 이름도 모르는 물건인데 장사꾼들의 자본이 얼마나 되는지 묻자 적은 장사는 수백만원, 큰 장사는 수천만원이라.

 

이리저리 둘러보았더니 한강물을 보게 되었는데 강 중으로 띄우는 화륜선과 범선은 볼 수도 없고 강은 다리로만 왕래하여 건너기에 한량없이 편하도다.

 

지천에 공원이라 공원에 들어간즉 가지각색의 보기 좋은 나무와 꽃다운 화초 속에 백성들이 돈을 내어 유명한 공있는 사람들의 형상을 옥석으로 수백개씩 만들어 세움으로써 천추만세(千秋萬世)에 공을 표하였으며 사방에 있는 물에는 수백개의 장식이 올라갔다 내려올 때 오색이 영롱하니 경치도 좋거니와 풍악 소리에 세상 근심이 없어진다.

 

학교마다 들어간즉 학교들도 크거니와 수도 많은지라 전국 인민 교육으로 말하자면 백에 구십구는 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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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을 다 구경하고 새문(서대문)밖을 나아가니 정거장이 있는데 한 번 타면 반도국에 못 가는 곳이 없는 철도에 올라 인천으로 향할 때 용산에 다다르니 좌우의 제조소(공장)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지라.

 

잠시 후에 인천에 다다르니 태극 국기 단 군함들과 상선들이 항구에 가득하며 세출은 세입보다 몇백배라. 삼남을 다 구경하고 강원도 금강산에 이르니 금강산 경치도 좋고 꾸며놓기도 잘 꾸며놓았다도다. 금강산이 세계에서 유명하니 외국사람이 몇만명씩 와서 쓰는 게 돈이오. 대한사람은 버는것이 돈이로다.

 

며칠안에 삼천리 강산을 다 구경하니 십리마다 포대가 있어 외국 군함은 고사하고 비도(匪盜)조차 들어올 수 없으며 백성은 일에 편안하여 무명잡세가 무엇인지, 죄없이 잡혀가어 혹독한 형벌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태평한 세월이라.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백성들이 갓 벗고 경의를 표하고, 상의원(의회)에 들어가도 백성들이 뽑아 보낸 의관(국회의원)들의 학문도 유려하여 좌우에 앉아 공사를 의논하는데 한 의관이 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수백년 전에 나라의 존망이 위태롭고 지극히 빈약하여 그때에는 관민(官民)이 다 학문이 없어 그리하였는지라. 세력이 있는 관리들은 땅을 외국에게 주고 매관매직도 성행하여 백성들이 떠들고 일어났고, 그때 외국사람들도 다 말하기를 나라에 좀 여망(與望)이 있다 하였으니 학문 없는 백성들이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철모르고 떠들다가 정부에서 죽기로 기약하니 그 백성의 입을 막고 마음대로 벼슬을 팔며 협잡을 하여 백성을 압제하던 사람들 중에서도 몇몇이 이대로 있으면 나라가 무사하지 못할 것을 알고 죽기로 힘을 다해 관민간에 합동하여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렇게 문명 강국이 되었다."

 

그 때 사상을 불문하고 나라일을 하던 사람들의 형상을 만들어 종로에 세움으로써 천추만세에 이르도록 공을 표시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연설을 듣고 있었는데, 딱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음력 기해년(1899년) 정월 보름날에 아이들이 부럼을 깨는 소리더라.

 

-제국신문 1899년 2월 25일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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